베이루트 택시(Beirut Taxi) - 모래알
작은 존재들은 무력하고 하찮다. 땅속에서 애벌레의 몸으로 몇 년의 시간을 견디고 천적을 피해 나무에 올라 힘겹게 번데기가 되어 목숨을 건 탈피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날개를 달고 자유의 몸이 된 매미는 이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다 한달도 채 못되어 죽고 썩어서 없어진다. 이사를 가게 된 초등학생이 짝사랑하던 아이에게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을 때 그 아이의 세상은 무너지지만 부모님의 이사계획을 막을 수는 없다. 한국전쟁 피난길에 막동이를 잃어버린 어머니는 평생을 눈물 속에 살아가지만 막동이를 찾기 위해 전 국민이 힘을 모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존재들은 주어진 운명을 살아낸다. 매미는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에 서로를 만나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며 그 와중에도 종을 지키기 위해 죽기 전 알을 남긴다. 이사를 간 초등학생은 결국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이사를 간 새로운 동네의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가방을 멜 것이며, 막동이의 어머니는 오늘도 막동이의 이름과 어린시절의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나누어 주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작고 약한 존재들의 움직임은 하찮지만, 그들을 가까이서 볼 때에 그 움직임들은 더 이상 하찮지 않게 된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것들은 커지고 큰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된다.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달리 말해 작은 것들의 입장과 시선을 입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서사와 감정에 집중하는 것. 작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들의 움직임을 의미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때, 우리는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나무껍질 위에 올려놓고, 자식을 위해 이사계획을 수정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서명운동에 이름 세 글자를 적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인 크고 작음의 척도 안에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광활한 우주 안에 감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먼지처럼 작은 존재라고 하겠다. 한없이 작고 하찮은 우리네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관심이다. 나와 다른 작은 존재들을 가까이서 바라봐 줌으로써 그들의 움직임에 의미가 부여되는 그 마법 같은 순간, 당신의 눈에 차오르는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애써 묻지 마시길.
CREDIT
작곡: 유지영
작사: 유지영
편곡: 베이루트 택시
레코딩: 롱우드스튜디오 / 권영민
믹싱: 주정근
마스터링: 허니버터 스튜디오 / 박정언
총괄제작: 김준기
PUBLISHED BY BISCUIT SOUN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