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 - 갯바위에서
갯바위에서'는 지난 여름으로 타임머신을 태워보내는 작은 선물입니다.
참을 수 없는 눈물과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담아 보냅니다
- 김재영
긴 여름이 남긴 낙관과 낭만
밴드 야자수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024년의 긴 여름을 그들의 첫 정규 앨범으로 갈무리한다.
올해 여름은 많은 이들을 지치게 하는 계절이었다. 계속되는 폭염은 여름에 대한 좋은 기억을 삼켜버릴 듯했지만, 야자수의 1집 앨범을 듣고 다시금 여름의 낭만을 되찾았다. 부산 바다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그들의 음악은 다음 여름을 기다리게 만든다.
야자수는 이름처럼 그들만의 고유한 여름 사운드를 들려준다. 멤버 4명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연주 속에서 한여름의 여유로움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장르의 경계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시대인듯하여 내 멋대로 ‘썸머 기타팝’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여름의 풍경을 그리니 썸머, 기타와 드럼이 매력적으로 듣기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 내 기타팝이다.
야자수는 1집 <갯바위에서>에 대해 ‘시작부터 끝까지 듣거나, 끝에서부터 시작으로 듣는’ 앨범이라고 소개한다. 그 소개에 걸맞게 <갯바위에서>는 짜임새 있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앨범은 ‘낙관’과 ‘낭만’이라는 두 가지 정서가 교차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낙관’이 불안이나 걱정을 모르는 순수함을 담고 있다면, ‘낭만’은 불안과 걱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갯바위에서>는 낙관의 여름을 보내고 낭만의 여름을 기약하는 이야기 - 또는 낭만의 여름에서 낙관의 여름을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시원한 리프로 앨범의 시작을 여는 [여름일기]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 “내 소중한 여름 일기 / 아무도 없던 바닷가 /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라는 구절로 대표되는 낙관적인 문장들은 요즘처럼 비관이 흔한 세상에서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후 이어지는 트랙에서도 내달리는 드럼과 베이스는 걱정 없는 여름날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며, 이런 정서는 작은 방에서 여름날을 추억하며 만족하는 [방 안에는]까지 이어진다.
한편, 앨범이 중반부로 넘어가면 낙관에서 낭만으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전하고, ’때때로 그럴 수 있음’을 노래한 뒤 나오는 [여름캠프]는 차분한 기타 연주 위에 짧고 절제된 가삿말이 더해지며, 많은 여백을 남긴다. 우리는 사연 많은 늦여름 밤을 그리는듯한 후주를 들으며 그 여백을 각자의 낭만적 기억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
이 앨범의 정서는 [갯바위에서]와 [약속] 두 곡을 통해 정점을 찍는다. 마치 독립영화를 보듯, 두 곡이 이어지며 여름 바다에서 꾼 꿈과 그 꿈을 현실로 가져오려는 다짐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여름을 느끼다 난 잠에 들었었지 / 꿈 속에서 우리는 약속했지”라는 가사는 낙관적인 기대를 나타내고, 이어 “난 잠에 깨도 우리 약속은 잃진 않을 거야”라는 가사로 낭만적인 결말을 맺는다.
앨범 <갯바위에서>는 단지 여름의 기억을 담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을 노래한다. 그 감정들은 잊힌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삶을 긍정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낙관과 낭만은 희귀해지고 여름은 계속해서 길어지는 세상에서, 앞으로도 야자수가 지금처럼 꾸준히 창작을 이어나가길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더 긴 다음 여름을 기꺼이 기다리게 하길 기원해본다.
- 공간과몰입, 타옥(TAOK)
credits
야자수 Yajasu
Vocals & Guitar by 김재영 Jaeyoung Kim
Guitar by 김정원 Jeongwon Kim
Bass by 하준 Jun Ha
Drums by 박요한 Yohan Park
Music (1. 2. 3. 4. 5. 6. 7. 8. 9.) by 김재영 Jaeyoung Kim
Music (10.) by 김정원 Jeongwon Kim
All Lyrics by 김재영 Jaeyoung Kim
Arranged by 김재영 Jaeyoung Kim, 김정원 Jeongwon Kim, 하준 Jun Ha, 박요한 Yohan Park
Produced by 야자수 Yajasu
Recorded & Mixed by 김병규 Byungkyu Kim @Say Sue Me’s Studio
Mastered by 강승희 Kang Seunghee @Sonic Korea
Artwork & Design by nanahanki @nanahan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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